한불 예술, 광양서 타오르다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두 도시, 하나의 불꽃(2 FEUX, 2 FLAMMES)》이 전남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2026년 8월 4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11월 8일까지 이어진다. 한국과 프랑스 작가 9명이 참여해 회화와 영상, 혼합매체, 몰입형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는 국제 교류전이다.
전남미술관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광양읍 순광로 660에 자리한다. 기존 전남도립미술관은 2026년 7월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에 맞춰 전남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을 맞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존 전라남도 도민에게 적용되던 관람료 할인 범위도 광주와 전남의 특별시민으로 확대됐다.
두 나라 예술이 만나는 전시
이번 전시에는 고영찬, 박인혁, 정혜성 등 한국 작가들과 앙토냉 하코, 넬슨 페르니스코 등 프랑스 작가들이 참여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해 온 작가들은 각자의 시선과 조형 언어를 통해 풍경과 일상, 지역문화와 철학적 개념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전시가 열리는 아래층 전시실로 향하는 길에는 투명한 유리 난간이 설치된 넓은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에서는 탁 트인 내부 공간과 로비에 놓인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관람객들은 개방감 있는 공간을 지나 본격적인 작품 감상에 들어간다.
색채로 만나는 풍경의 합류
전시실에 들어서면 박인혁 작가의 2026년 작품 〈풍경 합류〉가 먼저 시선을 끈다. 캔버스에 유채로 제작된 대형 회화로, 은은한 색채가 화면에서 부드럽게 뒤섞인다. 멀리서 바라볼 때 색의 흐름이 한데 모이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전시 공간에는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박인혁 작가의 또 다른 2026년 작품 〈풍경 공명〉도 캔버스에 유채로 완성됐다. 신체의 움직임과 감정의 흐름을 회화 언어로 구현한 대형 작품이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흔적과 색채가 서로 맞물리며 역동적인 인상을 전한다.
두 작품은 같은 작가가 풍경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룬 결과물이다. 〈풍경 합류〉가 색의 섞임과 잔잔한 분위기를 보여준다면, 〈풍경 공명〉은 움직임과 감정이 화면 위에서 부딪히고 이어지는 장면을 드러낸다.
폐기물이 만든 몰입형 공간
넬슨 페르니스코 작가의 2026년 작품 〈벅벅 씻어내, 벌레는 안녕!〉은 혼합재료로 제작한 몰입형 설치 작품이다. 여러 재료를 층층이 쌓아 거대한 텐트나 신비로운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구조를 만들었다.
설치물 위에는 익살스럽게 표현된 얼굴 그림들이 떠 있는 듯 배치됐다. 오싹하고 기묘한 분위기와 유머러스한 요소가 한 공간에 공존한다. 폐기물과 여러 재료가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바뀌면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작품에 머문다.
모나드에서 출발한 회화
정혜성 작가의 2026년 작품 〈나의 모나드〉는 캔버스에 과슈 물감으로 제작한 소형 회화 연작이다. 수많은 작은 사각형 조각이 일정한 질서에 따라 배열돼 전시장 벽면을 채운다.
작품은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말한 모나드 개념에서 출발했다. 모나드는 창이 없는 독립된 실체이자 우주를 비추는 최소 단위로 설명된다. 개별적인 사각형들은 각각 독립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전체 화면 안에서 하나의 질서를 이룬다.
노란 방에 담긴 다시 만나요
발랑틴 가르디에네 작가의 〈다시 만나요〉는 종이 위에 잉크로 제작됐다. 밝은 노란색 바탕에 스탠드 조명과 테이블, 의자 형태가 유쾌하게 배치돼 있다.
화면 속 가구는 만화나 동화책에 등장하는 따뜻한 방의 물건처럼 단순하고 친근하게 표현됐다. 작품의 선명한 색채와 경쾌한 구성은 주변 작품과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며 관람 흐름에 변화를 준다.
파리 지하 공간을 담은 영상
고영찬 작가의 〈꺄따 본 데상트〉는 상영 시간이 17분 32초인 단채널 영상 작품이다. 영상은 파리 지하 카타콤을 탐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벽면에 영상이 상영되는 어두운 공간에는 관람객이 앉을 수 있는 소파와 작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헤드폰이 마련돼 있다. 관람객들은 자리에 앉아 화면과 음향에 집중하며 지하 공간을 탐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회전하며 펼쳐지는 전남 풍경
앙토냉 하코 작가의 2026년 작품 〈익스플로러 전라남도〉는 혼합매체를 활용한 가변 설치 작품이다. 전시실 중앙에 놓인 대형 회화 구조물이 회전하면서 작품의 여러 면을 차례로 드러낸다.
작가는 전남 지역의 풍경과 일상을 관찰한 뒤 이를 자신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관람객은 한자리에 멈춰 있지 않고 움직이는 작품을 따라 시선을 옮기게 된다. 회전하는 구조와 지역에서 포착한 이미지가 결합되며 전남의 일상이 새로운 형태로 제시된다.
오일장 재료가 된 현대미술
피에르 게냐르 작가의 2026년 작품 〈불고기 서브제로〉는 실제 냉동고 5대와 시장에서 수급한 동식물 부산물로 구성됐다. 냉동고 안에는 전남 지역 오일장에서 확보한 식재료와 여러 부산물을 활용한 작업이 들어 있다.
지역 시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재료가 전시장 안으로 옮겨지면서 익숙한 대상은 낯선 현대미술 작품으로 바뀐다. 프랑스 작가가 전남의 시장과 식재료 문화를 바라본 시선이 냉동고라는 구조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물건과 오일장의 생생한 재료가 결합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선거 현장을 기록한 색채
조한나 작가는 2026년 단채널 영상 〈파랑대잔치〉와 〈색상견본표〉를 선보인다. 〈파랑대잔치〉는 2.35대 1 화면비로 제작된 영상 작품이다. 〈색상견본표〉는 명함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작업했다.
두 작품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전남광주 여수시의 선거운동 현장을 촬영하고, 현장에서 수집한 후보자 명함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선거운동 현장에서 발견한 색과 인쇄물, 기록 영상이 작가의 작업을 거쳐 전시장 안에서 다시 구성됐다.
11월 8일까지 이어지는 교류전
《두 도시, 하나의 불꽃》은 한국과 프랑스 작가들의 서로 다른 시선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전시다. 회화의 색채와 움직임부터 영상 속 이야기, 폐기물을 활용한 몰입형 설치, 전남의 풍경과 시장 문화를 재해석한 작품까지 폭넓은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들은 각기 다른 재료와 표현 방식을 사용하지만, 지역의 일상과 개인의 감각을 예술로 옮겼다는 점에서 연결된다. 고요한 대형 회화 앞에서는 관람객의 걸음이 느려지고, 회전 설치물과 냉동고 작품 주변에서는 재료와 구조를 세밀하게 살피는 모습이 이어진다. 어두운 영상 공간에서는 헤드폰을 착용한 관람객들이 화면에 집중한다.
전시는 2026년 11월 8일까지 전남미술관에서 열린다. 미술관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광양읍 순광로 660에 위치한다. 광주와 전남 시민은 특별시민으로서 동일한 관람료 할인 혜택을 적용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