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에 새겨진 천년충절

천덕산 기슭에서 만나는 덕양서원
전남 곡성군 오곡면 천덕산 기슭에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을 기리는 덕양서원이 자리한다. 곡성읍 맞은편에 있으며 섬진강 기차마을에서도 가까운 편이다. 주차 공간이 마련돼 있고 경내가 정돈돼 있어 서원의 건축과 역사를 차분히 살펴볼 수 있다.
자갈이 깔린 마당과 목재 건물, 산을 등진 배치는 번잡한 관광지와 다른 고요한 분위기를 이룬다. 이곳의 핵심은 오래된 건물 자체에만 있지 않다. 왕을 대신해 목숨을 내놓은 신숭겸 장군의 충절과 그 정신을 오랫동안 이어 온 지역 공동체의 기억이 서원 곳곳에 담겨 있다.
높은 뜻을 우러르는 산양문
덕양서원으로 들어서는 문은 산양문이다. 한자로는 산양문이라 쓰며, 높은 산을 우러른다는 뜻을 지닌다. 이름은 시경 소아 거할 편에 나오는 고산앙지 경행행지에서 가져왔다. 높은 산을 우러러보고 큰길을 따라 걷는다는 의미다.
산양문은 단순한 출입문을 넘어 서원이 기리는 인물의 삶을 마주하는 첫 관문이다. 문을 지나는 사람이 신숭겸 장군의 높은 절의를 큰 산처럼 바라보고 그 올곧은 길을 되새기도록 하는 뜻이 담겼다. 외부에서는 경내로 향하는 엄정한 입구로 보이고, 안쪽에서는 바깥 풍경을 단정하게 담아내는 틀이 된다.
서원의 중심인 덕양강당
산양문을 지나면 자갈 마당 너머로 덕양서원의 강당이 나타난다. 유생들이 함께 글을 읽고 학문을 논하던 중심 공간이다. 건물은 정면 다섯 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졌으며, 앞쪽에는 길게 이어진 툇마루가 놓였다.
강당은 단청을 화려하게 올리지 않고 나뭇결을 드러낸 모습이다. 좌우의 부속 건물이 단청으로 장식된 것과 대비되면서 중심 건물의 묵직함이 한층 또렷해진다. 처마 아래에는 덕양서원 편액과 건물 이름을 적은 덕양강당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덕양은 숙종 21년인 1695년 국가가 내려 준 사액 명칭이다. 덕이 햇볕처럼 밝게 드러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목숨을 바쳐 고려 태조 왕건을 구한 신숭겸 장군의 충절과 덕을 기리는 서원의 성격이 이 이름에 압축돼 있다.
강당 기둥의 주련에는 깎아지른 덕산이 하늘 북쪽에 우뚝 서고 비단 같은 물결이 땅을 따라 동쪽으로 흐른다는 내용의 구절도 보인다. 산과 물을 통해 서원이 자리한 주변 풍경을 나타내는 동시에, 장군의 굳은 절의와 이어지는 가르침을 떠올리게 한다.
신덕재와 연서재가 전하는 배움
강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머물던 신덕재와 연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신덕은 덕을 삼가 닦는다는 뜻이다. 연서는 중용에서 비롯된 말로, 나이에 따른 차례를 지키며 서로 공경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신덕재가 자신을 바르게 다스리는 수양을 말한다면, 연서재는 다른 사람과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예절을 보여준다. 두 건물은 서원의 교육이 지식 습득에 그치지 않고 개인의 품성과 공동체의 관계까지 아울렀다는 점을 드러낸다.
오늘의 문화공간으로 이어지는 서원
덕양서원에서는 국가유산청의 향교 서원 국가유산 활용사업에 따른 향교 서원에서 신나게 놀자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향교와 서원, 배향 인물의 역사적 가치를 살려 전통 공간을 문화 활동과 인문 교육, 청소년 인성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2014년 시작됐으며, 2026년에는 전국 95곳의 향교와 서원이 프로그램 운영 대상으로 선정됐다. 곡성군이 주최하고 곡성문화원이 주관하는 덕양서원 행사는 6월 첫 일정을 시작으로 11월까지 모두 14차례 진행된다.
엄숙한 제향과 교육의 공간이었던 서원 마당에는 어린이와 가족이 함께 역사와 전통을 접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국가유산을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민이 직접 경험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사업 취지가 현장에서 구현되는 모습이다. 프로그램 관련 문의는 곡성문화원 061-362-0890으로 할 수 있다.
비각을 지나 만나는 덕양사
강당 뒤편에서 계단 쪽으로 향하면 작은 팔작지붕 건물이 보인다. 신숭겸 장군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을 보호하는 비각이다. 고려의 창업공신이자 왕건을 대신해 전사한 장군의 충절이 조선시대에도 높이 평가됐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계단 위에는 덕양서원에서 가장 엄숙한 영역인 덕양사가 자리한다. 신숭겸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보수를 거쳐 정돈된 모습을 갖췄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장군을 기리는 제향이 봉행된다. 강당과 재실이 배움의 영역이라면 덕양사는 배향 인물의 정신을 기리는 중심 공간이다.
927년 공산전투와 신숭겸의 희생
927년 태조 왕건은 현재의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에 포위됐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신숭겸 장군은 왕건의 옷을 입고 왕을 대신해 적을 유인했다. 왕건은 그 사이 포위망을 벗어났지만 신숭겸은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장군이 전사한 대구 지묘동의 지명 역시 지혜가 기묘했다는 이 일화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내용은 지명 유래에 관한 전승으로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장수의 희생은 왕 한 사람을 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고려의 역사를 잇는 결정적인 충절로 기억됐다. 고려는 태조 때부터 국가 행사인 팔관회에서 신숭겸과 김락 두 장군을 추모했다. 관복을 입힌 두 장군의 형상을 말에 태워 뜰을 달리게 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1120년 예종은 두 장군의 사연을 듣고 감격해 이들을 추모하는 도이장가를 지었다. 도이장가는 고려시대 향가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신숭겸의 충절이 역사적 기억을 넘어 문학 작품으로 이어진 사례다.
애마와 장군의 머리에 얽힌 전승
곡성에는 신숭겸 장군의 애마와 관련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후백제군이 신숭겸을 왕건으로 알고 머리를 베어 갔다가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버렸고, 장군의 말이 그 머리를 물고 수백 리를 달려 고향 곡성의 동리산으로 왔다는 내용이다.
말이 산속에서 슬피 울자 태안사 승려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찾아갔으며, 장군의 머리임을 알아보고 장례를 치렀다고 전한다. 현재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 골짜기에는 장군의 머리를 모셨다는 장군단이 조성돼 있다. 이 이야기는 신숭겸을 향한 지역의 추모가 오랜 세월 전승됐음을 보여준다.
강원도 춘천의 장군 묘에는 봉분 세 기가 있다. 왕건이 머리 없이 돌아온 장군의 시신에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례를 치렀으며, 황금 두상을 노린 도굴을 막기 위해 봉분을 세 곳에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장군과 관련된 장소는 여러 지역에 남아 있다. 태를 묻었다고 전하는 곳은 곡성군 목사동면 용산재이며, 머리를 모신 곳으로 전해지는 장소는 태안사 장군단이다. 몸을 안장한 묘는 춘천에 있고, 피 묻은 갑옷을 묻은 곳은 대구에 있다고 전해진다. 곡성은 장군의 탄생과 지역 전승이 이어지는 출발점으로 소개된다.
철폐 뒤에도 이어진 제향
덕양서원은 선조 22년인 1589년 처음 세워졌다. 정유재란 때 건물은 모두 불탔지만 신숭겸 장군의 위패는 남았다고 전한다. 이후 숙종 때 사액을 받아 곡성을 대표하는 서원으로 자리 잡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덕양서원도 훼철됐지만 후손과 지역 유림은 제향을 중단하지 않았다. 서원이 사라진 터에 유허비를 세우고 제단을 마련해 장군을 계속 추모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에는 서원을 다시 세웠다.
건물은 사라졌어도 제향과 기억은 끊기지 않았고, 그 지속성이 오늘날 덕양서원을 남긴 힘이 됐다. 덕양서원의 역사는 문화유산이 건축물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실천으로 계승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간의 순서로 읽는 서원의 가치
서원은 학문을 익히고 인물을 기리며 스스로를 수양하던 공간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진 학문과 예절의 전통을 살필 수 있으며, 인과 의, 예와 지, 신을 중시한 유교적 가치관도 건물의 배치와 이름에 반영돼 있다.
덕양서원의 동선을 따라가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높은 뜻을 우러르는 산양문을 지나고, 덕을 삼가 닦는 신덕재와 서로 공경하는 연서재를 마주한다. 이어 학문을 논하던 덕양강당을 거쳐 장군의 위패가 모셔진 덕양사에 이른다.
각 공간은 서로 떨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배움과 수양, 공경과 추모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 신숭겸 장군의 희생과 이를 천 년 가까이 기억해 온 곡성 지역의 역사가 그 흐름의 중심을 이룬다.
덕양서원 관람 정보
| 구분 | 내용 |
|---|---|
| 위치 | 전남 곡성군 오곡면 덕양서원길 42 |
| 관람 | 상시 개방 |
| 입장료 | 무료 |
| 시설 관람 문의 | 덕양서원 061-363-1495 |
| 문화 프로그램 문의 | 곡성문화원 061-362-0890 |
주변에서는 신숭겸 장군의 탄생지로 알려진 곡성군 목사동면 용산재와 장군단이 있는 죽곡면 태안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덕양서원과 연결된 장소를 차례로 둘러보면 신숭겸 장군의 생애와 곡성에 남은 전승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