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번의 손길 광양 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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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번의 손길 광양 죽전

광양에서 이어진 60여 년의 외길

전라남도 광양시 유당로에는 대나무를 깎고 깃을 붙이며 전통 화살의 맥을 지켜온 궁시장 김기 장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1940년 태어난 김기 장인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전통 화살 제작에 힘을 쏟았다.

전통 화살인 죽전 한 발을 완성하려면 100번이 넘는 손길과 세밀한 정성이 필요하다. 곧은 화살대를 고르고 다듬는 일부터 깃과 쇠촉을 붙이고 무게중심을 맞추는 과정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김기 장인이 걸어온 길은 전통 기술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궁시장이 지닌 뜻

궁시장이라는 명칭에는 활과 화살을 만드는 전통 기술의 의미가 담겨 있다. 궁장은 활을 만드는 장인을, 시장은 화살을 만드는 장인을 가리킨다.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모두 제작하거나 그 전통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뜻한다.

구분의미
궁장활을 만드는 장인
시장화살을 만드는 장인
궁시장활과 화살 제작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장인

김기 장인은 이 가운데 전통 화살 제작의 맥을 이어왔다. 그가 다룬 죽전은 단순한 무기에 머물지 않는다. 재료의 성질을 읽는 경험과 정확한 균형 감각, 오랜 반복 작업이 함께 담긴 전통 공예품이다.

두 스승에게 배운 전통 기예

김기 장인은 어린 시절부터 섬진강과 남해안의 해풍을 맞으며 자란 광양의 대나무를 가까이 접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화살 제작에 관심을 두게 됐고,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전통 기예를 배웠다.

1955년부터 1957년까지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박상준 선생에게 배웠으며, 1958년부터 1963년까지는 같은 종목의 조명제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두 스승 아래에서 화살대의 균형을 바로잡는 방법과 꿩 깃을 다듬어 붙이는 기술, 부쇠를 조율하는 방법을 익혔다.

엄격한 전수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은 김기 장인이 평생 이어간 전통 화살 제작의 토대가 됐다. 이후 광양에 정착한 그는 대나무와 불, 깃털을 다루며 한길을 걸었다.

무형문화재 지정과 전승 기반

김기 장인은 전통 화살 제작과 전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9월 29일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 광양 궁시장으로 지정됐다. 이는 개인의 숙련된 솜씨뿐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 제작 기술의 가치를 확인한 결과였다.

2014년에는 후학을 양성하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반으로 광양궁시전수교육관이 건립됐다. 전수교육관에서는 김기 장인이 제작한 작품과 전통 화살이 완성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전수교육관은 장인의 아들인 김철호 관장이 운영하고 있다.

전승도 이어지고 있다. 김철호 이수자와 양지욱 전수자 등이 전통 기예를 계승하며 광양의 무형유산을 잇고 있다. 장인의 손에서 축적된 기술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전수교육관은 제작 공간을 넘어 전통문화 전승의 현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죽전 한 발이 만들어지는 과정

김기 장인이 만드는 전통 화살은 여러 재료와 공정이 정확하게 맞물려야 완성된다. 화살의 곧음과 비행 방향, 무게중심을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제작 과정에는 정밀한 판단과 반복 작업이 요구된다.

  1. 재료 채취
    늦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마디가 바르고 단단한 2년에서 3년생 릿대를 채취한다. 해풍을 맞고 자란 대나무 가운데 화살대로 쓰기에 알맞은 재료를 고르는 단계다.
  2. 건조와 졸이기
    채취한 대나무를 훈증하고 충분히 말린다. 이후 불에 쬐면서 휜 부분을 곧게 잡는 도듬질을 수십 차례 반복한다. 화살대 전체가 바른 선을 이루도록 세심하게 다루는 과정이다.
  3. 오늬와 촉 다듬기
    화살을 시위에 걸 수 있도록 오늬를 만들고, 반대쪽에는 쇠촉인 부쇠를 단단히 박는다. 양쪽 끝을 정확하게 다듬어야 화살의 형태와 기능이 갖춰진다.
  4. 깃 붙이기
    꿩이나 매의 깃털을 다듬어 민어부레풀과 같은 전통 접착제로 붙인다. 깃은 화살의 비행과 직진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간격과 방향을 일정하게 맞춰야 한다.
  5. 무게와 균형 조율
    마지막으로 화살마다 무게와 중심축을 정밀하게 맞춘다. 앞뒤의 균형과 화살대의 곧음을 확인하고 조정한 뒤에야 전통 화살 한 발이 완성된다.

작업 공간에서는 불에 대나무를 쬐고 다시 곧게 펴는 과정이 거듭된다. 잘 다듬은 깃은 일정한 방향으로 화살대에 놓이고, 장인의 손은 작은 어긋남도 살피며 무게중심을 조율한다. 완성된 화살들이 가지런히 놓인 모습에서는 반복된 손길과 긴 제작 시간이 드러난다.

곧음에 담긴 장인정신

전통 화살의 가치는 겉모양에만 있지 않다. 적합한 대나무를 고르는 안목, 불을 이용해 화살대를 바로잡는 기술, 깃과 촉을 정확히 결합하는 솜씨가 하나로 모여야 한다. 각 단계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화살의 균형과 직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김기 장인의 화살은 곧음과 바름을 추구한 오랜 작업의 결과물이다. 평생 이어온 제작 활동은 전통 궁시 기술의 역사를 보존하는 데 기여했으며, 광양에서 형성된 장인의 기술은 전수자들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광양궁시전수교육관은 김기 장인의 작품과 전통 화살 제작 과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장소다. 전시된 화살과 제작 도구, 전승 과정을 따라가면 죽전 한 발에 얼마나 많은 공정과 집중력이 필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광양의 대나무에서 시작된 장인의 외길은 오늘날 지역의 소중한 무형유산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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