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긴 고려의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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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긴 고려의 광양

전남 광양시 성황동에는 고려시대 석탑의 구조와 지방 불교문화의 흔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이다. 화려함이나 거대한 규모를 앞세우기보다 단정한 비례와 소박한 조형을 보여주는 석탑으로, 오랜 세월 광양의 역사 한가운데를 지켜왔다.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시간과 당시 석조 건축의 특징을 오늘에 전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탑의 기단과 탑신, 지붕돌, 상륜부를 차례로 살펴보면 돌을 다듬고 쌓아 하나의 완성된 구조물을 만든 옛 석공의 치밀한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의 위치와 지정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은 전남 광양시 성황동 746번지에 위치한다. 구봉산으로 향하는 길목의 용장사 전각 뒤편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을 둘러보면 사찰 공간과 석탑이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란스럽지 않은 공간에 놓인 탑은 지나치게 꾸미지 않은 단아한 형태로 시선을 모은다.

이 석탑은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다. 현재는 시도유형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고려시대 석탑의 일반적인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체 높이는 약 3.5m다. 탑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이 올라선 정형화된 구성이 먼저 드러난다. 위로 갈수록 규모가 점차 작아지는 안정적인 비례도 눈에 띈다.

2층 기단이 받치는 안정된 구조

석탑의 아래쪽에는 두 층으로 구성된 기단이 놓여 있다. 기단은 여러 장의 판석으로 짜였으며,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과 중앙의 버팀기둥이 표현돼 있다. 돌의 면을 복잡한 무늬로 채우기보다 탑을 안정적으로 받치는 구조와 기둥 표현에 중심을 둔 모습이다.

상층 기단 역시 간결하게 구성됐다. 각 면에서 모서리기둥과 중앙의 버팀기둥을 확인할 수 있지만, 별도의 화려한 조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장식을 절제한 기단은 탑 전체에 정갈하고 차분한 인상을 더한다.

화려한 장식보다 구조의 균형을 강조한 소박한 조형미는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의 뚜렷한 특징이다. 기단은 단순한 받침에 머물지 않고 탑신을 안정적으로 떠받치며 전체 비례를 정돈하는 역할을 한다.

몸돌과 지붕돌로 이룬 삼층 탑신

기단 위의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인 옥개석으로 구성된다.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 차례로 쌓았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실제 목조 건축물의 기둥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더했다.

탑은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작아진다. 이러한 체감은 3층 구조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전체 형태가 무겁거나 둔해 보이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크기가 줄어드는 흐름을 아래에서 위로 따라가면 석탑의 단정한 비례를 더욱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각 층 지붕돌의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이 마련돼 있다. 지붕돌의 낙수면은 비교적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처마 끝부분에서는 살짝 위로 올라가는 반전이 나타난다. 곧게 쌓은 몸돌과 완만한 곡선의 지붕돌이 조화를 이루면서 단순한 구조 안에서도 섬세한 변화를 만든다.

이 같은 세부 요소는 석탑이 단순히 돌을 포개 놓은 시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몸돌의 크기와 지붕돌의 곡선, 층마다 달라지는 규모를 함께 계산해 만든 석조 건축물로서 당시 제작 기술과 균형 감각을 드러낸다.

노반과 복발 보주로 마무리한 상륜부

석탑의 가장 위쪽에는 머리장식에 해당하는 상륜부가 남아 있다. 노반과 복발, 보주가 차례로 놓인 구성이다. 노반은 탑의 머리장식을 받치는 부분이며, 복발은 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형태의 장식이다. 보주는 꽃봉오리와 비슷한 형태로 탑의 꼭대기를 마무리한다.

상륜부의 작은 장식까지 확인하면 석탑이 기단과 탑신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완성된 구조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2층 기단, 3층 탑신, 층마다 놓인 옥개석, 상부의 노반과 복발·보주가 질서 있게 연결돼 있다.

고려 후기 석탑으로 보는 까닭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다만 조각과 장식의 표현은 비교적 소박하며, 일부 양식에서는 퇴화된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을 종합해 고려 후기에 조성된 석탑으로 추정한다.

특히 세밀하고 화려한 장식을 앞세우기보다 간결한 구조와 절제된 표현을 보여준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당시 지방에서 조성된 석탑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요소다. 기단의 기둥 표현과 탑신의 체감, 옥개석의 받침과 곡선은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단서가 된다.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의 가치는 웅장함에 있지 않다. 고려 후기 지방 석탑의 구조와 소박한 조형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사라진 옛 사찰을 보여주는 흔적

석탑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과거 이 일대에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서 불교문화와 사찰 활동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인 셈이다.

다만 관련 문헌이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아 당시 사찰의 이름과 규모, 창건 배경은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단정하기보다 현존하는 석탑의 구조와 형태를 중심으로 그 역사적 의미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석탑 자체는 옛 광양의 모습을 전하는 실물 자료로 남아 있다. 단단한 돌에 새긴 기둥 표현과 세 층의 탑신, 세월의 흔적이 밴 지붕돌은 이 일대에 존재했던 불교문화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1976년 보수와 문화유산 보존

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석탑의 기단부는 한때 파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정비가 시행됐으며, 1976년 완전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다.

석탑을 살펴볼 때는 오래된 건축물의 외형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진 보존 과정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변화와 훼손을 겪은 문화유산을 정비하고 관리한 과정이 있었기에 고려시대 석탑의 형식과 조형을 현재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유산의 보존은 과거의 유물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의 역사와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은 체계적인 문화유산 관리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현장이기도 하다.

광양 역사문화여행의 작은 보물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은 압도적인 크기나 화려한 장식을 지닌 문화유산은 아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천천히 살펴보면 고려시대 석탑의 기본 구조와 세부적인 조형 특징을 차례로 확인할 수 있다.

아래쪽에서는 두 층으로 쌓인 기단과 각 면의 기둥 표현을 볼 수 있다. 시선을 위로 옮기면 몸돌과 옥개석이 번갈아 놓인 3층 탑신이 이어지고, 꼭대기에서는 노반과 복발·보주로 구성된 상륜부를 만난다. 탑 전체를 한 번에 바라본 뒤 각 부분을 나누어 살피면 구조가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주변에서는 오래된 석탑의 회색빛 표면과 절제된 형태가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용장사 전각 뒤편에 자리한 탑은 주변 공간을 압도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으며, 정면과 측면을 따라 바라보면 사방으로 정돈된 형태가 드러난다.

광양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려면 지역 곳곳에 남은 과거의 흔적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명 관광지만 빠르게 둘러보기보다 이처럼 규모는 작아도 오랜 역사를 품은 문화유산을 찾아보면 광양의 역사적 층위를 더욱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광양 성황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옛 광양의 불교문화와 석조 건축 양식을 전하고 있다. 단정한 기단과 세 층의 탑신, 부드러운 옥개석의 곡선, 꼭대기의 장식까지 차례로 살펴볼 수 있는 광양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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