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둘레길에서 만나는 도선과 윤선도 이야기

백운산 둘레길, 천년의 숲길과 역사
광양시 백운산 자락에는 총 126.36킬로미터에 이르는 아홉 개의 둘레길 코스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제1코스인 '천년의 숲길'은 옥룡사지에서 시작되며,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오랜 시간과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백운산 둘레길 곳곳에는 금목재, 대방재, 백운산자연휴양림, 하조마을, 외산마을, 추산시험장 등 다양한 지명이 표지판에 표시되어 있어 방문객들이 방향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길들은 여러 마을과 시간을 하나로 잇는 역할을 하며, 각 코스는 '섬진강 매화길', '외갓집 가는 길', '달 뜨는 길', '함께하는 동행길' 등 이름을 가지고 있어 그 의미를 짐작하게 합니다.
도선국사와 옥룡사, 그리고 동백숲
천년의 숲길은 통일신라 말기의 선승이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세우면서 시작됩니다. 도선국사는 부족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그는 864년부터 898년까지 이곳에서 35년간 머물며 수백 명의 제자를 길렀습니다. '옥룡'이라는 지명도 그의 도호 '옥룡자'에서 유래했습니다.
현재 옥룡사 절터에는 사찰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나, 백계산 남쪽 비탈에 수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7헥타르에 걸쳐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동백숲은 수령 100년이 넘는 나무들이 순림을 이루고 있어 내륙에 자리한 대규모 동백숲으로는 드물며, 2007년 천연기념물 제48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윤선도와 추산리 추동마을
백운산 둘레길 인근 추산리 추동마을에는 고산 윤선도의 마지막 유배지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마을은 배 모양의 산세와 돛대 자리에 위치해 '가래골'이라 불렸으며, 한자로는 추동(楸洞)에서 추동(秋洞)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윤선도는 1587년 태어나 1671년 세상을 떠난 조선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문인으로, 그의 삶은 여러 차례 유배와 고난으로 점철되었습니다. 특히 예송 논쟁의 여파로 70세가 넘은 나이에 함경도 삼수를 거쳐 광양 옥룡면 추산리 추동마을에 유배되어 약 2년간 머물렀습니다.
윤선도는 풍수에도 뛰어나 정조 시대 문헌인 홍재전서에서 '제2의 무학'이라 불릴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이 지역은 도선국사와 윤선도라는 두 명의 뛰어난 풍수가가 시대를 달리해 머문 특별한 공간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둘레길
도선국사가 심은 동백나무 숲과 윤선도의 유배지 표지석이 공존하는 이 둘레길은 역사와 자연, 그리고 문학이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현재 도선국사마을이라는 농촌체험마을이 조성되어 있으며, 물레방아가 정자 곁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습니다. 새로 포장된 주차장과 동백정원 조성 공사도 진행 중입니다.
이 길을 걷는 이들은 옛 절터의 흔적과 천 년을 견뎌온 동백나무, 그리고 시인의 흔적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 미리 정하지 않은 채, 모든 시간이 조용히 쌓여가는 이곳은 자연과 역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백운산 둘레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 도선국사와 윤선도의 삶과 사상을 함께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의미 깊은 길입니다. 이 길을 통해 방문객들은 광양의 풍부한 역사와 자연을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